전영재 기자의 DMZ로 떠나는 생태기행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이미 끝났음에도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냉전시대의 유물로 남아 있는 곳
     
  비무장지대는 인간들이 남북으로 갈라져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고 휴전협정을 맺으면서 자의적으로 스스로 폐기한 땅이다.
남북의 청년들은 이 곳에서 아직도 운명처럼 서로에게 총부리를 들이대야 한다.
해가 뜨는 동해에서 해가 지는 서해까지 155마일 휴전선을 따라 이어진 비무장 지대는 남쪽은 철책으로 북쪽은 목책으로 이어지면서 수 만년동안 이어져 온 백두대간의 기상을 남북으로 끊어 놓았다.

비무장지대는 분단의 세월이 반세기가 넘도록 계속되면서 남쪽은 북쪽으로 북쪽은 남쪽으로 조금씩 이동했기 때문에 한반도의 비무장지대 면적은 휴전협정당시 보다 줄어들었다. 특히 남과 북은 최첨단 무기를 최전방에 경쟁적으로 배치하면서 비무장지대는 전세계에서가장 중무장된 지역으로 바뀐 지
 
오래되어 비무장지대가 가장 중무장돼 있다는 이 역사적인 아이러니는 우리들이 반드시 풀어야할 숙제이다.

우리나라 야생조류도감이나 야생동물도감에 나오는 귀한 천연기념물들이 남한에서는 유일하게 비무장지대에서 생명을 이어오고 있는 것을 직접 관찰할 수 있다.
멸종 위기에 처해 동물원에서도 볼 수 없는 다양한 조류와 동물이 비무장지대에서는 생명을 이어오며 우매한 우리 인간에게 자연의 오묘함과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다.

이 지역에 대부분 멸종위기에 처해 절대적 보호가 필요한 천연기념물 조류와 야생동물이 아주 건강하게 살고 있다.
     
  비무장지대인 고성 고진동계곡과 인제 사철리 지역에서는 태고의 신비한 모습을 오랜 진화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살아있는 자연의 화석'이라 불리는 천연기념물 217호 '산양'이 무리를 이루며 서식하고 있다.
양구 문등리 지역에서는 비무장지대에 살고 있는 까마귀와 멧돼지가 단절된 분단의 세월동안 서로 돕고 사는 공생의 방법을 익혀오고 모습이 관찰되기도 한다.

가을걷이가 끝나 인적이 끊기기 시작하면 철원 비무장지대 하늘에서는 우리 민족에게 가장 상서로운 새로 인식돼 온 천연기념물 202호인 두루미의 고고한 날갯짓이 이어진다.
 
또한 천연기념물 203호인 재두루미가 무리를 이루며 먹이를 먹고 창공에서 자유롭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겨울이 되면 천연기념물 243호인 검독수리가 번식지를 마련하는 곳도 바로 비무장 지대이다.
양구 비무장 지대인 대암산 자락에는 천연기념물 216호인 사향노루도 얼굴을 삐쭉 내민다.
절망의 땅 속에서 솟아나고 있는 소중한 우리 민족의 희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