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재 기자의 DMZ로 떠나는 생태기행
1964년 겨울 강원도 설악산에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발은 그칠 줄 모르고 온 산과 마을을 하얗게 덮어버렸다.
많은 눈이 내리자 수천마리의 산양들은 안전지대인 마을 근처까지 내려오기 시작했다.
산양이 여기 저기서 모습을 드러내자 전국의 사냥꾼들이 설악산으로 모여들었다.
춥고 배고픔에 지쳐 먹이를 찾아 민가로 내려온 산양은 이 때 3천마리 가량이 희생됐다고 한다.
사냥꾼들과 마을 주민들은 폭설이 내려 오도가도 못하는 산양들을 주로 지게 작대기로 때려 잡아내는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며 지금까지 그 추억을 전하고 있다.
지금도 설악산 백담사 주변 마을인 인제군 북면 용대리를 가면 정종범( 62세)씨 등에게 그 무용담을 들을 수 있다.
 
우리나라 산양은 기상이변과 무분별한 인간의 포획으로 멸종위기에 처하자 초식동물 포유류로는 처음으로 천연기념물 217호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산양은 '환상의 동물'로 불려져 오고 있는데 이는 주 서식지가 사람이 접근할 수 없는 암벽지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양을 정확하게 관찰하는 것은 포획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아주 드문 일이다.
기암절벽을 주 서식지로 하는 산양은 인간이 접근하면 바위주변에서 몸을 숨겨 좀처럼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몸의 털 색깔도 바위색과 똑같은 회갈색이나 검은 갈색을 띠기 때문에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자연에서 산양을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산양의 나이를 구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머리에 난 날카로운 뿔로 이 뿔은 나이가 먹을 수록 길어지고 뿔 주위에 테가 마치 나무의 나이테처럼 많아진다.
지금까지 이 테가 일년에 하나씩 생기는 것으로 추정돼 산양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산양은 전 세계적으로 일부 국한된 지역에 서식하고 있어 국제적인 보호를 받고 있는 희귀동물이다.
우리나라 산양은 외국산 산양과 속(屬)이 전혀 다른 종으로 우리가 꼭 지켜야할 야생동물 자원이다.
지구에 국한된 지역에 5종의 산양이 분포하고 있다.
그 중 우리나라 산양은 티베트 포메 고원, 네팔, 중국 북부의 하북성, 서부의 사천성 및 시베리아의 동남부 등 7아종이 분포돼 있다.
시베리아 동남부에서 만주를 거쳐 한반도에 분포하고 있는 한 아종이 우리나라 산양이다.
 
야생동물을 포획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던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암벽이 있는 산악지역에는 많은 산양이 살았다.
북한에는 평안남·북도, 황해도와 38선 이북 강원도 지역에 산양이 살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남한에는 강원도 설악산에서 충청북도 월악산을 거쳐 경상북도 주흘산과 통고산에 이르기까지 태백산맥 줄기 표고 천미터 이상 지대에서 서식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의 산양은 불과 몇십마리가 살고 있을 것으로 야생동물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현재 산양이 서식할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는 강원도 설악산과 대암산, 점봉산 등과 비무장 지대인 고진동 계곡등 일부지역(충북 월악산은 동물원에서 인공증식해 방사한 산양이 살고 있음)이다.

백두대간을 따라 서식하던 산양이 멸종위기에 처한 것은 가장 무서운 천적 인간에게 무분별하게 희생됐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 지역에 대한 서식 산양 개체수나 정확한 분포조사는 제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다.
지금도 몇 마리 안되는 산양은 겨울이면 밀렵의 표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