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재 기자의 DMZ로 떠나는 생태기행
2001년 1월 전국적으로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지역에 따라 30년 혹은 32년만의 폭설이라고 한다.
모든 먹이가 눈속에 깊이 파묻히면서 비무장지대 안에 사는 야생동물의 탈진 사고가 잇따르기 시작했다.
민간인 출입 통제선 이남에서는 곳곳에서 군용과 산림청 헬리콥터가 출동해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했지만 비무장지대 야생동물들에겐 먹이를 뿌려 줄 수가 없다.
비무장지대까지 헬리콥터는 이동할 수 없는 데다 육로를 이용할 경우 아직도 어디에 어떤 대인지뢰와 폭발물이 묻혀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001년 시베리아의 삭풍이 몰려와 한반도가 꽁꽁 얼어붙던 1월 말의 어느 주말 오후, 평소 가깝게 지내던 모 전방부대 공보장교에서 전화가 왔다.
"전기자님! 고성 비무장지대에서 산양 여러 마리가 탈진했다는데요"
부랴부랴 해당 군부대에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니 탈진된 산양이 대여섯 마리 관찰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토요일이라 카메라 기자와 섭외도 안되고 당장 달려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마음을 접고 산양의 현재 건강상태에 대한 얘기가 궁금해 다시 전화를 걸었다.
지금 산양의 상태가 어떤지, 몇 마리나 보이는지, 비무장지대 안인지 밖인지, 비무장지대 안이면 철책선에서 몇 미터 떨어져 있는지, 지역은 어디인지 등 취재를 하는데 장소가 고성 오소동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1999년 'DMZ의 산양' 을 취재할 때 두 번 갔던 '오소동'지역이다.
고성 오소동 지역은 동부전선 중에 가장 낮은 지역에 위치해 있다.
오소동 계곡은 말 그대로 까마귀가 모이는 지역이라 그 옛날 남북 분단 전 금강산으로 가던 선조들이 까마귀가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붙인 이름이다.
까마귀가 많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까마귀가 모이는 곳은 분명히 한여름이든 겨울이든 야생동물의 사체가 있다.
집단을 이루며 이 사체를 먹으며 해체하는 작업까지 하는 것이 까마귀다.
우리 인간에게 흉조로 알려진 이유는 까마귀 주변에 언제나 야생동물의 사체, 즉 죽음이라는 것이 함께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까마귀는 자연 생태계에서 익조로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탈진 상태라는 말을 듣고 걱정은 했지만 다행히 산양이 조금씩 움직인다는 공보 장교의 얘기를 들으며 다소 안심할 수 있었다.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고, 까마귀 밥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데스크에 보고하고 월요일 아침 취재 출장 허가를 받으니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산양을 주로 이른봄부터 늦여름까지 취재했기 때문에 한겨울 자연의 눈속에 있는 당당한 산양을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30년만에 그것도 한겨울에 신기루처럼 홀연히 나타난 오소동의 산양이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긴 겨울밤을 지루한지 모르고 하얗게 지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