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재 기자의 DMZ로 떠나는 생태기행
아침 기온은 영하 15도.어제보다 더 떨어져 있었다.
     
  30여년만에 폭설뿐만 아니라 30여년만에 강추위마저 찾아온 것이다.
그동안 비무장지대 취재 경험에 비춰볼 때 추운 날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가 될 확률이 높다.
시베리아에서 몰려온 매서운 삭풍이 구름이 많은 저기압을 모두 밀어내기 때문이다.
창문을 열어 날씨를 확인하니 생각 그대로 였다.

다시 오소동 계곡을 가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육군 뇌종부대 전방 대대에 도착해 밤사이의 상황을 물어보고 오소동으로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철책선을 왼쪽으로하고 주행을 시작하자 한 물체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바로 산양이다.
 
다행히 탈진도 하지 않고 건강한 모습으로 혹독한 겨울을 나는 산양의 모습이었다.
철책 너머 끝없이 이어진 눈덮힌 산야를 배경으로 우뚝 서있는 산양은 자연의 신성함 그 자체였다.

그렇게 30년만의 폭설과 강추위 속에서 그동안 모두가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졌을 것이라고 걱정해온 산양이 우리 인간들에게 당당한 모습, 그것도 동물원도 밀렵꾼에 잡힌 모습도 아닌 아주 자연 속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겨울을 당당히 나고 있는 황홀한 자태를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추위와 바람이었다.
차에서 내리자 마자 마치 영하 15도에 초속 22미터로 불어대는 강풍은 체감온도 영하 40도로 우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바람은 촬영을 맡았던 박창수 카메라맨(엄홍길씨의 안나푸르나 등정에 동행했던 서울 MBC의 산악 전문 카메라맨)조차 견디기 힘든 모양이다.

산양은 놀랍게도 철책선 가까이에서 깊은 눈을 파헤치고 나무 뿌리를 캐내 먹지 않는가.
먹을 것이 없어 가장 힘든 겨울에 산양은 나무 뿌리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창 맛있게 나무뿌리를 먹고 있던 산양이 우리를 발견하자 고개를 번쩍 쳐들고 어쩌면 처음 보는 민간인에 대한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한참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서로가 한겨울에 얼어붙어 마주친 눈빛에는 '살아있다'라는 심장의 박동소리를 확인했다.
산양은 유유히 저지선을 넘어 비무장지대로 사라져 버렸다.
다시 계곡으로 이동하는 순간 철책선에서 2백미터가량 떨어진 비무장지대안에서 소나무를 향해 점프하여 솔잎을 먹는 산양 한 마리가 발견됐다.
겨울 먹이에 대한 궁금증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여늬 동물이 모두 포기한 암벽지대를 주서식지로 하는 산양은 그 척박한 땅에서 생동감 넘치게 겨울을 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