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재 기자의 DMZ로 떠나는 생태기행
산양의 이동경로를 추적하기 위해 비무장 지대를 조사하기로 하고 군부대 요원과 함께 금강산 자락의 한줄기인 그림같은 해금강이 가장 잘 보이는 전방을 찾았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북한지역의 석호인 감호와 해금강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나뭇꾼과 선녀' 전설이 깃든 감호 앞에는 대남 선전용 대형 간판이 흰글씨로 선명하고 주변에는 북한군 초소가 여러 개 보였다.

  감호 주변 해안가에는 비포장 군사보급로가 관찰됐고 야생동물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됐다.
삼엄한 경비도 없는 데다 목책마져 이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군 지역 철책선을 제외하고는 비무장지대와 북한 지역은 중간 중간 목책과 철책을 세워놓아 이 곳 비무장지대에 살고 있는 산양은 바닷가와 북한지역을 자유스럽게 오갈 수 있을 충분한 조건이 되었다.
또한 북한 지역과 비무장지대, 우리 측으로 이어지는 해안가는 인간의 잣대로 남쪽 지역만 3미터가 넘는 철책이 설치돼 있었다.

남측 철책 바로 위로는 작은 섬이 하나, 산양이 마음만 먹으면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은 충분해 보였다.
그리고 아직 북한관련 산양 현행 자료는 학계에 보고된 것은 없지만 기암절벽으로 이뤄진 해금강 주변은 충분히 산양이 서식할 수 있는 장소로 보였다.

특히 그 동안 동부전선의 산양 주요 서식지가 오소동과 고진동계곡에서 확인됐지만 해금강 주변 비무장 지대도 산양이 서식했음이 장병들에 의해 확인됐다.
해안가 근처 비무장지대 암벽에서 살고 있던 산양들은 소금기가 필요하면 바닷가로 내려와 소금을 보충해오는 생태를 이어왔을 것이다.
야생동물에게 있어서 특히 산양이 소금을 섭취하는 것은 목숨을 건 이동이다.
어쩌면 지금 분단의 최근 동부전선 바닷가로 간 산양은 북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1997년 3월 비무장지대 북한 지역에서 시작된 산불은 엄청난 산림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고성 산불이 난지 4년 뒤인 2001년 10월 19일 동부전선 최전방 비무장지대를 방문했을 때 여전히 화마의 상처가 곳곳에 남아있었다.
해금강 윗쪽 지역인 죽망봉 부근도 수 백년이상 된 대부분의 소나무가 고사돼 있었고 잡목만이 다시 생명을 이어오며 성장하는 숲을 볼 수 있었다.

이 곳에서 경계 근무를 하는 장병들에게 물으니 이 지역에서도 산불이 나기 전 산양이 가끔 목격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산양의 오감, 특히 후각과 청각은 모든 야생동물이 그러하듯이 우리 인간보다 크게 발달돼 있다.

산양이 바다로 간 까닭은 동부전선 최전방 병사들의 비무장지대 관찰기록을 근거할 때 다음과 같은 추정도 가능하다.

바다가 보이는 7백미터 이상의 기암절벽에서 살고 있던 산양은 후각의 능력으로 산불이 남쪽으로 번지고 있음을 감지하고 여러 무리들이 안전지대인 저지대로 대피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중에 일부는 산불에 희생이 되고 바닷가로 피신했을 것이다.
먹이가 산 속보다는 부족한 바닷가에서 치여할 먹이 다툼을 벌였을 것이고 태어난지 2년 미만의 산양들은 다른 쪽으로 새 서식지를 찾는 과정에서 남쪽 바닷가로 이동했을 수도 있다.
특히 해안초소를 지키는 장병들은 지난 겨울 폭설과 혹한이 산양이 살고 있는 바닷가에 몰아 쳤을 때 뿔이 엄지손가락만 한 어린 산양이 얼어 죽어 묻어 주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