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재 기자의 DMZ로 떠나는 생태기행
인구 1만 5천명의 작은 산촌 강원도 양구군!

양구는 예로부터 산양의 고장으로 불릴 만큼 산양이 설악산 주변 다음으로 많이 서식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도 특정 성씨를 가진 친척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오순도순 사이좋게 살아가고 있다.
최근 양구군민과 산양과의 만남은 아주 드라마틱하다 못해 대자연의 연출이다.
양구군도 가을걷이가 끝나면 '양록제' 라는 군민화합 한마당 잔치를 벌인다.

이곳은 임경순 양구군수를 비롯해 절반이 넘는 만여명 가량의 군민들이 옛 '금강산 가던 길'을 따라 민통선 지역인 두타연으로 등반대회 행사를 해마다 열고 있다.
주민들이 민통선의 군사보급로를 따라 걸으며 통일의 의지를 다지고 군민의 화합을 도모하는 것이다.

두타연 지역에 도착했을 때 앞서오던 양구군수와 주민들은 깜짝놀랐다. 산짐승 무리가 불과 10여미터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때 뒤에서 누군가가

"산양이다"라고 소리쳤고

모두 걷던 길을 약속이나 한 듯 멈추었을 때!
갑자기 나타난 산양 다섯 마리도 건재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과시하듯 1분 가량을 서서 군민들을 응시했다.

군민들과 산양 다섯 마리는 시간과 공간이 멈춘 그 우연한 서로의 만남에서 서로의 고동치는 심장소리와 맥박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급히 길을 가던 산양은 잠시 숨을 돌리며 거친 호흡을 반복하자 군민들은 아직도 건강하게 살아 있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끼며 작은 떨림이 민통선 분위기를 엄습했다.
산양의 무리는 양구군민들에게서 고개를 돌리고는 지뢰밭을 지나 기암절벽으로 발빠르게 이동하며 그들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1998년 양구군 등반대회에서 산양의 등장은 군수를 비롯해 많은 군민들에게 후일 생명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데 중요한 사건이 된다.

  1999년 비무장지대에서 산양의 새로운 집단 서식지를 확인하고 서울대 산림자원학과 야생동물 생태관리학실 이우신 교수에게 급하게 기별을 했다.
이우신 교수는 제자들과 함께 내려와 현지 실시했고 필자는 제안을 했다.

" 이교수님! 일본에는 산양 인공증식센터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더 늦기 전에 우리나라에도 산양 인공증식센터를 건립해서 멸종위기를 막아 보죠"

이교수는 흔쾌히 응했고 자료 수집과 복원 방안 프로젝트 수립에 나섰다.

어느 지역에 만드는 것이 문제였다.
그 때 떠오른 지역이 등반대회에서 군민들이 살아 있는 산양을 목격한 양구군이 갑자기 생각이 났고 임경순 양구군수와 이우신 교수와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더구나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시도됐던 주요 시군 정책은 시장 군수가 바뀔 때마다 좌절되거나 물거품이 되는 경우가 많았던 점을 감안 할 때 지방자치 단체장이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있느냐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성공여부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초대 무투표 당선, 두번째 전국 최다 득표 당선으로 지역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임경순 군수는 적어도 흔쾌히 승낙하리라는 확신도 있었다.
산양생태를 함께 조사 취재하고 돌아오는 길에 저녁 식사 자리를 겸한 처음 만남에서 고희의 나이를 바라보는 임경순 양구군수는 젊은 교수에게 그동안 깍듯하게 예의를 표했다.
" 옛말에 귀인이 와서 도와준다는 말이 있는데 오늘 이교수님을 처음 뵈니 그 말이 생각이 납니다"
이삼년 양구군을 맡아 취재한 적이 있지만 임경순 양구군수의 첫 인사는 '산양 인공증식 센터 건립'의 청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임경순 군수는 양구군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준비 할 테니 이교수한테 문화재관리청 협의와 연구사업을 의뢰했다.
98년 민통선지역 등반대회에서 주민들과 함께 산양 다섯 마리를 확인한 임군수는 산양 인공 증식센터를 건립하기로 결정을 한 뒤 독특한 자체 생태조사에 들어갔다.
그 동안 양구지역에서 산양이 가장 많이 출몰했던 방산면 지역을 새벽마다 찾아가 마을 주민들에게 탐문조사를 벌인 것이다.

특히 한 때 산양을 밀렵해 법의 심판을 받았던 주민에게까지 찾아가 어느 지역에 몇 마리의 산양이 살고 있는지를 확인해 내는 치밀함을 보였다.

  현재 산양 인공 증식센터는 지방 자치 단체로서는 처음으로 포유류 천연기념물의 생명 문화재 가치를 인정하고 부지와 진입로 확보를 하고 문화재관리청에서 예산을 지원해 실시설계에 들어가는 등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다.

양구의 산양 인공 증식센터는 자연 상태 그대로 한국의 산양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다른 나라 야생동물 학자나 관광객들에겐 우리나라의 포유류 천연기념물의 보호 작업과 노력을 수준 높게 보여 줌으로써 야생동물보호에 대한 국가 신뢰도를 더욱 높이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산촌마을이자 분단의 접경지역에서 군사도시로 알려져 있는 양구군이 생명문화재를 지키고 보호하는 지방 자치 단체로 이제 국내외에 자랑스러운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