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재 기자의 DMZ로 떠나는 생태기행
비무장 지대에 밤이 깊어지면 산양은 무엇을 할까?
     
  비무장지대에 서식하는 산양을 취재하는 동안 계속 맴도는 질문이었다.

사실 그렇지 산양에 미친 야생동물 학자라고 하더라도 아니 그 누가 총탄이 날아올지 모르는 최전방에서 산양의 밤생활을 밝히겠다고 철책선에서 산양을 찾겠는가?
그러나 필자는 그작업에 들어갔다.
사단 정훈참모에게 사정을 하고 심지어 사단장까지 만나 이 작업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설득했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 언제 어떻게 벌어질 지 모르는 비무장지대에서 텔레비전 카메라로 산양의 야간 생태를 촬영한다는 것은 목숨을 건 큰 모험이었다.
 
밤이 되면 155마일 휴전선은 철책선을 따라 노란 불빛으로 치장된다.
적(?)의 침투를 경계해야 하기 때문에 압구정동의 휘황 찬란한 로데오 거리보다 전방 철책선이 더욱 밝다는 1급 군사기밀을 산양을 사랑하고 자연 생태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일반인에게 처음으로 공개한다.
철책선을 따라 155마일 휴전선에 끝없이 이어진 노란 나트륨등은 한마디로 환상적이다.
우리 병사들은 이 휴전선의 밤 불빛을 '자유의 투항등'이라 부르고 있다.

철책을 따라 오르내리는 추적과 잠복 작업이 사흘째 계속됐지만 산양은 좀처럼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
전방 각 초소에는 돌발상황에 대한 즉각 보고와 조치를 위해 인터컴이 설치돼 있다.

우리가 아무리 전방 철책선을 따라 경계근무를 서며 다녀봤자 산양을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결론에서 였다.
전방 상황실 주변에 기다리고 있다가 산양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인터컴으로 보고 받고 그 쪽으로 움직이자는 계획이었다.

지금에야 밝히지만 그 전방 사단은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로 유명한 동부 전선을 지키는 육군을지부대다.
야간에 최전방을 지키는 병사들이 야생동물의 움직임을 제대로 포착해 낸다는 것은 경계근무를 얼마나 잘 하고 있는가에 대한 척도이기도하다.

드디어 중대 상황실 인터컴이 "띠리릭 띠리릭" 울렸다.
상황실 근무병은 산양이 나타났다는 초병의 흐트러짐이 없는 보고를 받고 바로 중대장에게 보고했다.
마음이 급한 취재팀은 중대장에게 소초 근처로 빨리 가자고 재촉했고 수백개의 계단을 뛰어오르며 산양이 나타났다는 철책선쪽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15분정도 다리가 후들거리며 도착한 철책선에는 정말 귀엽고 잘생긴 산양 한 마리가 이상하리 만치 편안한 자세로 앉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부전선 비무장지대에 살고 있는 산양은 밤이면 불빛이 있는 철책선 근처에 접근해 먹이를 구하는 특이한 생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세계적으로 산양이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관찰은 아직까지 학계에 보고된 적이 없다.

이 같은 현상은 비무장지대에 인간이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을 오랜 기간 살면서 터득한 것으로 추정된다.
어두운 곳에서 천적의 위협을 느끼면서 먹이를 구하기 보다는 환한 불빛 주변에서 영양을 보충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터득했을 것이다.

     
밤이면 철책선 가까이 접근하는 산양의 행동은 먹이와 깊은 관계가 있다.
철책선 앞은 큰 나무가 모두 제거돼 시야가 트여 있는 데다 산양이 좋아하는 먹이감이 되는 풀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 특이한 것은 산양은 밤에 낮보다 경계 행동을 덜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