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재 기자의 DMZ로 떠나는 생태기행
“DMZ는 평화의 성지가 돼야 합니다”
글쓴이: 전영재
조회수: 7140
작성일시: 2012-01-31 14: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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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DMZ)가 내후년 환갑이 된다. 1953년 연합군과 북한군, 중국인민해방군 사이의 정전협정으로 탄생했으니 꼭 예순살이다. 그 ‘슬픈 생일’을 앞두고 한층 분주한 나날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 20년 가까이 DMZ 현장을 누벼온 전영재 춘천MBC 기자(DMZ콘텐츠연구소 소장)다.

“집에 있던 시간보다 DMZ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며 웃는 그는 기자 생활의 대부분을 DMZ와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지역 취재에 바쳤다. 보도, 방송 다큐멘터리는 말할 것도 없고 그가 쓴 DMZ에 대한 책은 모두 9권. 산양, 호사비오리, 까막딱따구리 등 세상에 알린 DMZ 서식 희귀종도 많다.

대학생부터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그가 DMZ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초년병 기자 시절이다. 서부전선 최전방의 성탄절 트리 점등식을 취재하던 젊은 기자의 시선은 화려한 불빛보다 그 너머 북녘 땅을 향했다. 아름다운 자연을 두동강내는 철책에 심장을 짓누르는 듯 답답함이 몰려왔다. 하루는 철책 부근 하늘을 비상하는 두루미를 만났다.

“그 두루미는 남북 하늘을 자유롭게 오가며 이미 통일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왜 여기부터 더는 올라갈 수 없을까 생각하니 안타까웠습니다.”

그때부터 짬을 내 DMZ에 대한 자료를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다. 한창 일복이 터진 초년병이 배려를 바라기란 꿈도 꿀 수 없었다. 어렵사리 촬영해도 군부대에 일일이 ‘검열’을 받아야 하는 등 취재 협조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고생 끝에 보람이 왔다. 1993년 우리 방송 사상 처음 호사비오리의 월동 장면 보도로 한국기자협회가 주는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호사비오리는 10년 뒤 천연기념물 438호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99년에는 멸종 위기에 놓인 산양의 집단 서식지를 중동부 전선 DMZ에서 찾아내 문화재청의 산양증식센터 설립으로 이어졌다.

“남북의 수많은 젊은이들의 피가 흘러 풀 한 포기 날 것 같지 않던 그 고지 위에 자연은 경이로운 복원력을 발휘해 평화의 땅을 만들고 이미 분단을 넘어 통일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여전히 허망한 이념 대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연처럼 실천하지 못할까요.”

올해로 기자 생활 20년을 맞은 그의 열정은 현재진행형이다. DMZ 60주년과 소속사인 춘천MBC 창사 45주년인 2013년에는 스무해에 걸친 열정이 작은 결실을 맺도록 노력하고 있다. DMZ의 생태를 3D 영상으로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DMZ가 끊이지 않는 인류의 분쟁의 역사 속에서 꽃핀 평화의 상징으로서, 생태자원의 보고로 조명받을 수 있는 국제적 행사가 마련되기를 꿈꾸고 있다. 나아가 DMZ가 세계인이 찾는 생태·평화 교육의 현장으로 자리잡아 지역 주민들에게도 보탬이 되는 ‘평화의 성지’가 되는 것도 그의 바람이다.

전 기자에게는 사랑하는 두 딸이 있다. 가끔 아빠의 손을 잡고 DMZ에서 뛰어놀던 천진한 아이들이 어느덧 10대 소녀가 됐다. 딸들이 아빠에게 물었단다. “아빠, 우리는 두루미처럼 왜 못 가?” 빙긋 웃기만 했던 아빠는 딸에게 들려줄 대답을 위해 오늘도 DMZ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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